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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LOWEEN

 

 

희망끼리 죽고 죽이던 절망적인 사건이 끝나고 미래기관은 바빠졌다. 77기생이 모든 절망을 짊어준 덕에 커다란 문제는 없었지만 그 사건에서 잃어버린 희망들의 빈자리는 꽤나 컸다. 남은 희망들은 그 자리들을 메우기 위해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건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짊어질 것들을 등에 지고 바쁜 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벌써 이런 시간인가.”

평소와 달리 일찍 일을 끝냈지만 집에 도착하니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침대에 외투를 놓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나에기들이 할로윈이니 뭐니 이벤트를 준비한다고 난리를 피워 더 피곤한 것 같았다. 할로윈이 뭐라고…… 함께 파티하자고 붙잡던 나에기들이 떠올라 가볍게 고개를 내저으며 욕실로 들어갔다.

씻고 나오자 개운함에 피곤이 조금 가신 것 같았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냈다. 시원한 맥주 한 모금 마시고 자면 딱 좋을 것 같아 캔을 따는데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꽤나 힘이 실린 손으로 두드리는 건지 소리가 무거웠다. 이 시간에 누구지? 식탁 위에 맥주를 내려놓고 현관으로 나갔다. 문고리를 잡으려는 때에 다시금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역시나 둔탁한 소리였다. 어쩌면 위험한 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나는 바로 가까이에 있던 검을 들었다. 그리고 긴장을 늦추지 않고 문을 열었다.

“누구냐!”

문을 열자마자 검을 상대의 목에 겨누었다. 상대는 놀랐는지 재빠르게 몸을 뒤로 내뺐다. 역시나 보통 사람이 보일 수 없는 행동이었다. 어느 정도 훈련을 받은 자라고 판단하고 그대로 검을 휘두르려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워워, 진정해 무나카타.”

오랜 시간 듣지 못했던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아른거렸다. 나는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너가…… 분명 너는, 죽었는데. 다시금 눈앞에 펼쳐지는 붉은빛에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떠올리고 싶지 않아 빈손으로 눈을 가렸지만 소용없었다. 한 번 떠오르기 시작한 기억은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발밑을 적시는 붉은 피 웅덩이, 그리고 그 속에 희미한 미소를 지은 채 눈을 감고 있는, 나의 오랜 친우. ㅡ사카쿠라.

그것은 지워지지 않는 나의 죄였다. 내가 짊어지고 가야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왜, 어째서. 환영을 본 걸까 싶어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하지만 그것은 사라지지 않았다. 문 앞에서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날 바라보고 있는, 지금 이곳에 존재할 리가 없는,

“사카쿠라……”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안색이 안 좋아, 무나카타.”

“다가오지 마!”

걱정스럽다는 얼굴로 다가오는 그것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그것은 당황했는지 몸을 굳혔다. 그래, 이게 옳은 일이다. 사카쿠라가 살아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눈앞에 있는 것은 가짜일 터였다. 나는 그것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누가 보냈지?”

“그게 무슨 소리야?”

“사카쿠라는 죽었다. 네놈은 누군가 날 조롱하기 위해 만들어낸 가짜겠지.”

그것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괴로움에 가득 차 말도 못하는 것 같은 얼굴로 그것은 날 바라보았다.

“그래, 맞아.”

그것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칼날을 잡았다. 놀란 마음에 다급히 칼을 뒤로 빼는 순간 푸른 액체가 볼에 튀었다. 잠깐, 푸른 액체……? 볼에 묻은 것을 손가락으로 쓸어 다시 보아도 색은 변하지 않았다. 그것의 손에서 흐르는 것은 붉은 피가 아니었다. 푸른 액체. 분명 피일 터였지만 색 때문인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손에서 흐르는 푸른빛을 보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몇 번 그 행동을 반복하는 동안 액체는 서서히 줄어들더니 더는 흐르지 않았다. 그리고 손의 상처도 사라져있었다.

“이게 무슨……”

믿을 수 없는 눈으로 그것을 보자 희미한 웃음이 돌아왔다.

“맞아, 난 죽었지. 하지만 무나카타,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겠어?”

오늘? 그것의 질문에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나에기들이 소란을 피웠던 이유.

“……할로윈?”

“맞아, 할로윈. 죽은 자들이 단 하루, 지상으로 돌아오는 날.”

그것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날 향해왔던 그리운 웃는 모습이었다. 저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정말로 사카쿠라인 것인가? 혼란스러워 뒤로 물러서는데 갑자기 그가 나를 안았다.

“보고 싶었어, 무나카타.”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겨우 내뱉는 것만 같았다. 날 껴안는 손이 필사적이어서 더 이상 의심할 수가 없었다. 검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조심스레 사카쿠라의 등을 껴안았다.

“정말로…사카쿠라냐?”

“그래.”

사카쿠라의 몸은 결코 따뜻하지 않았지만 온기가 가슴으로부터 전해져왔다. 다시는 느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온기에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사카쿠라의 등 뒤에 놓은 손에 힘을 주며 더욱 내게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눈물을 사카쿠라의 어깨에 흘려보냈다.

 

-

 

“맥주 마시고 있었나보네?”

“뭐, 가볍게 한 모금하려고 했는데 딱 너가 와서 아직 입도 못 댔어.”

“그럼 이제 나랑 같이 마시면 되겠네.”

사카쿠라는 냉장고에서 맥주 한 캔을 꺼내며 웃었다. 사카쿠라는 내가 따놓은 맥주도 들고 침대에 기대앉았다. 그리고 옆자리를 가볍게 손으로 두드렸다. 날 부르는 손짓에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사카쿠라의 옆에 앉아 맥주를 받아들었다. 내가 맥주를 한 모금 마시는 사이 사카쿠라는 캔을 땄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나야 뭐, 눈코 뜰 새도 없이 바빴지.”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며 묻는 사카쿠라의 질문에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너는? 사카쿠라에게 되물어보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 옆에 있지만 사카쿠라는 죽은 사람이었다. 죽은 사람에게 어떻게 지냈냐고 물어보는 것 자체가 바보 같기도 했지만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 무섭기도 했다. 결국 말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보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 수 있는 거지?”

“죽은 자가 지상에 있을 수 있는 건 할로윈 때뿐이야.”

“그 말은 할로윈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거지.”

사카쿠라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말하며 맥주를 마셨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오늘이 끝나기까지 얼마 시간이 남지 않았다. 그런데 왜 저렇게 태연한 거지?

“대체 왜 이렇게 늦게 온 거지?”

나도 모르게 화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사카쿠라는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무엇인가 생각하는 듯 하던 사카쿠라는 눈동자를 굴리더니 들고 있던 맥주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었다.

“아니…바쁜데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너가 방해될 리가 없잖아.”

날 생각해서 한 행동에 차마 뭐라 할 수 없어 웃어버렸다. 사카쿠라는 언제나 날 위해 움직였다. 설마 지금 이 상황에 와서도 그럴 줄은 몰랐다. 변하지 않은 사카쿠라의 모습에 웃음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사카쿠라는 날 보더니 기쁘다는 듯이 웃었다. 눈이 마주친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고 싶었던 말들 참 많은데 이렇게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말이 안 나오네.”

“……그렇군.”

한참 웃은 사카쿠라가 기대오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하고 싶은 말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쏟아내기엔 시간이 턱 없이 부족했다. 무엇보다 괜한 말들로 이 시간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단지 단 한 마디, 그동안 담아왔던 말 한 마디만 하고 싶었다.

“…보고 싶었다, 사카쿠라.”

“……나도. 나도 보고 싶었어, 무나카타.”

사카쿠라는 내 쪽으로 몸을 돌리며 손을 올렸다.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사카쿠라는 조심스럽게 내 볼을 건드렸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놀라 몸을 굳히는 사이 사카쿠라는 붕대에 감긴 오른쪽 눈을 손가락으로 쓸었다. 깃털이 지나가듯 움직이던 손이 멈추더니 사카쿠라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사카쿠라는 이마를 맞댄 채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미안하다, 무나카타.”

사카쿠라의 눈동자에는 자신을 향한 책망이 담겨져 있었다. 나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그건 틀렸다. 이 눈은 사카쿠라를 믿지 못해 받은 벌이자 희망을 지키지 못한 내가 짊어지고 가야할 업보였다. 사카쿠라의 잘못이 아닌 나의 잘못. 금방이라도 피를 터뜨릴 것 같은 사카쿠라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미안해야할 것은, 너가 아니라 나다.”

사카쿠라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눈을 마주쳤다.

“널 믿지 못한 날 용서하지 마라, 사카쿠라.”

사카쿠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눈가가 붉어지고 있었다. 눈물이 고이고 있었지만 사카쿠라는 울지 않으려는 듯이 눈에 힘을 주었다. 그 탓에 인상을 쓰는 게 되어버린 사카쿠라의 얼굴을 보며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너도 나에게는 우는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건가? 나와 닮은 행동에 사카쿠라가 했던 것처럼 그의 머리를 당겨 끌어안았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된다.”

사카쿠라의 몸이 작게 떨렸다. 억눌린 흐느낌이 사카쿠라에게서 흘러나왔다. 사카쿠라는 필사적으로 내 등을 붙잡았다.

“난, 널 원망한 적 따위 한 번도 없었어.”

등을 잡은 사카쿠라의 손에 힘이 실렸다. 그동안 사카쿠라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던 속내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사카쿠라는 울음과 함께 수많은 말들을 토해냈다. 나는 사카쿠라의 등을 토닥이며 가만히 들어주는 것밖에 할 수 업었다. 대부분은 눈물에 뭉개져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바보같이, 애처럼 울었네.”

사카쿠라는 오래 울지 않았다. 빨개진 눈을 손등으로 비비며 부끄럽다는 듯이 웃었다. 사카쿠라는 개운한 지 기지개를 켜다가 멈췄다. 사카쿠라의 시선은 한 군데에 고정되어있었다. 뭘 보는 거지? 사카쿠라의 시선을 따라 눈을 돌리자 그곳에는 시계가 있었다. 시침과 분침이 12시에 가까워져 가는 시계가.

“이제 갈 시간이네.”

사카쿠라는 남은 맥주를 들이키고는 입가를 손등으로 훔치며 말했다. 사카쿠라에게는 미련이 없어보였다. 남겨진 나와는 달리. 사카쿠라와 함께 있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그는 죽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왔다. 그것은 사카쿠라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이별의 순간이 닥치자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성은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손은 이미 사카쿠라의 팔을 잡은 후였다.

“가지마.”

“무나카타?”

“가지마라, 사카쿠라.”

사카쿠라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사카쿠라는 내 눈을 마주하다가 눈을 감았다. 그리고 고개를 내저으며 내 손을 붙잡았다.

“무나카타. 나는 가야만 해. 아니, 갈 수밖에 없어.”

“……”

“난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존재니까.”

“사카쿠라……”

표정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보내고 싶지 않았다. 다시 혼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사카쿠라를 잡은 손에 힘이 빠지고 아래로 떨어졌다. 하지만 바닥에 닿는 느낌은 없었다. 대신 부드러운 온기가 손을 감싸고 있었다. 사카쿠라는 한 손으로는 내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 내 볼을 꼬집었다. 내 입꼬리를 자신의 손으로 올리며 사카쿠라는 웃었다.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너답지 않아.”

사카쿠라는 내 두 손을 잡더니 내 눈을 바라보았다. 사카쿠라의 눈동자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무나카타. 넌 내 희망이야. 그러니까 내 몫까지 행복하게 살아줘.”

사카쿠라의 몸이 서서히 투명해지고 있었다.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는 카운트다운 마냥 점점 커져만 갔다. 내 손을 잡은 사카쿠라의 손마저 흐릿해지며 온기를 잃어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분함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때 부드러운 것이 입술에 맞닿았다. 사카쿠라의 입술이었다.

“사랑해, 무나카타.”

그리고 안녕. 그 말과 함께 사카쿠라는 사라졌다. 환한 미소만을 남겨둔 채. 사카쿠라가 사라진 자리에는 사탕이 하나 떨어져 있었다. 사탕은 사카쿠라의 마지막 온기를 모아둔 것처럼 따뜻했다. 나는 사탕을 집어 들어 입을 맞췄다. 애잔하게, 조심스럽게. 이곳에 있었던 사카쿠라를 향해서.

“……사카쿠라.”

정확히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감정은 사카쿠라를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사카쿠라, 오직 너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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